구로동 샛별룸살롱 살인 사건

2017. 9. 23. 22:50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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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수와 김태화의 현장검증 모습

(사진 1990년 3월 13일자 경향신문)

 

 

 

1990년 3월 9일,

희대의 살인범 김태화(당시 22세)를 체포하기 위해

온갖 경찰병력이 동원된 가운데

주범이었던 김태화는 형사를 유유히 농락하며

서울시 종로구 종로3가 카페 '팜파스'에서 술을 마시고 있다가

결국 형사와의 몸싸움 끝에 체포된다.

공범 조경수(당시 24세)는 김태화에 앞서 나흘 전인 3월 5일, 먼저 체포되었다.

 

한창 혈기왕성한 젊은 나이의 이들 청년 둘이 저지른 극악무도한 살인 행각은

전국을 공포로 들썩이게 만들었고

이 인면수심의 범죄에 대해 사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조경수와 김태화는 전남 나주에서 자란 고향 선후배 사이이자

십대 시절 저지른 범죄 행위로 인해 1985년부터 5년간 교도소에서 복역한 바 있는 감옥 동기였다.

출소한 이후에도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오히려 "강도짓을 하여 3,000만원을 모아 함께 술집을 차리자"는 명목 하에

1990년 새해 첫날 밤부터 전남 광주의 한 룸살롱에서 술을 마시다

시비 끝에 1명의 종업원을 살해, 주인에게 중상을 입히고 도주한다.

그 후 1월 28일, 서울 구로동에 위치한 '샛별 룸'에서 술을 마시다

여종업원과 시비가 붙어 이를 말리는 종업원들까지 포함 총 4명을 잔혹하게 살해한다.  

이 사건이 바로 1990년대 초반, 한국 사회를 경악에 빠뜨렸던

'샛별 룸살롱 살인사건'이다.




왼쪽부터 샛별 룸살롱 살인사건의 주범인 김태화(22)와 조경수(24)



 

민주화 운동의 시작과 함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리고

1990년대가 열리면서 강력범죄 또한 80년대와는 다양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생계형 범죄, 혹은 원한에 의한 범죄가 주를 이루었던 과거와는 달리

사회를 향한 울분을 살인 등의 행위로 해소하는

이른바 '반사회적 범죄'가 주를 이루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1994년에 일어났던 지존파의 범죄가 그렇고,

그에 앞서 일어난 조경수와 김태화 살인사건 또한 그렇다.

이들은 모두 가난한 하층민의 환경 속에서 자라났다는 것,

그로 인해 부자들에 대한 막연한 증오심을 키워왔다는 것 등의 공통점이 있다.

 

 

 4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김태화는 어려서부터 가난한 집안에서 성장했다.

부모는 별거 중이었고 가난을 벗어날 길이 없어

이미 어린 시절부터 도둑질을 경험했다고 한다.

중학교 시절, 남에 집 앞에 세워진 자전거를 몰래 훔쳐 탄 이후로

생애 처음 소년원에서 1개월을 살게 되었고

그 이후로 강도, 상해 등의 혐의로 수없이 소년원과 교도소를 들락거렸다.

 

조경수는 김태화에 비해 심히 어려운 환경은 아니었다.

4남 3녀, 이렇게 7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으며

키가 크고 호리호리한 몸에 연약한 생김새가 살인범의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고 한다.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지만 집안 환경 때문에 그리 한 것이 아니라

어려서부터 술을 배워 술을 많이 마시고 다니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렸다고 한다. 

 

두 사람은 누구보다 막역한 사이였다.

어려서부터 같은 고향에서 자라온 출신 성분 덕택에도 그랬겠지만

범죄를 함께 하며 쌓아온 묘한 동조의식이 내면에 담겨져 있었다.

범죄자들 중 공범이 있는 경우에, 의외로 끈끈한 우정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고 하던데

이 두 사람이 바로 대표적인 경우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이후 조경수는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집안에서 내어준 돈으로

김태화의 변호인을 구하겠다고 한 바 있을 정도다.

죽기 직전 마지막 형장에서도 두 사람은 서로의 안위를 염려해줄 만큼

참으로 대단한 우정(?)을 과시했다고 한다.





1990년 1월 1일.

새해 첫날부터 그들은 전남 광주의 한 술집에서 술을 마시며 범죄를 도모했다.

89년 12월에 출소했으나 출소 후 이들이 택한 것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이 아닌, 또다른 범죄였다.

 

평소 술을 엄청 마셔댔던 조경수와 김태화는

룸에 동석한 여종업원이 전과자라 하여 그들을 비웃자 욱하는 마음에

종업원과 이를 말리던 주인을 수차례 칼로 찌르고 도망친다.

결국 이로 인해 종업원은 그 자리에서 숨지고, 주인은 중상을 입는다.

주인의 진술을 토대로 공개수배된 이들은, 광주를 피해 서울로 도주한다.

 

1990년 1월 28일. 

두 사람은 전국에 지명수배 되어 서울 구로동 단칸방에 숨어 지내다가

맨날 쳐먹던 술이 그리웠던지 결국 있는 돈, 없는 돈 바리바리 긁어모아

바로 그 문제의 구로 2동 샛별 룸살롱을 찾아갔다.

그날 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리라곤 과연 생각했을까?

 

두 사람은 동석한 여종업원 앞에서 자신들이 감방에 갔다 왔다는 사실을 자랑스레(?) 떠벌리고

괜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며 은근히 협박했다.

"아따, 이 기집애. 삼삼하게 생겼다잉~ 2차 안 가냐, 2차?"

2차는 없다는 종업원의 말에 (이미 이 순간 두 사람이 제정신이 아님을 간파한듯)

"씨방 니가 지금 우리 무시하냐? 사장 나와, 사장!!"

"손님,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사장 나오라니까 이 개쉐이들!!!"

"야, 이 미친새끼들 당장 끌어내!"

......

결국 이리하여 룸살롱 바깥으로 쫓겨나는 개쪽을 당하게 되고...

생각하면 할수록 억울하고 원통한(?) 마음에

이를 부드득 갈며 다시 뉴턴하여 룸살롱으로 향한다.

모조리 죽여버리겠다고 다짐하며 두 손에는 흉측하게 빛나는 사시미칼을 움켜쥐고서.

 

술집 영업이 거의 다 끝나가는 새벽 즈음

강제적으로 샛별 룸에 다시 쳐들어온 조경수와 김태화는

당시 남아있던 십대의 어린 종업원들 4명(남자 2, 여자 2)을 칼로 찔러 무참하게 살해한다.

"퍽! 죽어라!!!"

"으악!!!!!"

이 현장이 얼마나 끔찍했냐하면

출동한 경찰이 오바이트를 할 정도로 온 바닥에 새빨간 피가 낭자했으며

대부분의 시체가 단순히 찔린 것이 아니라, 거의 온 살점이 다 떨어져나가고 뼈대가 보일 정도로

처참한 상태였다고 한다.

이들이 얼마나 이를 갈고 덤볐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당시 술집 사장 부부는 일찍 퇴근한 상태였기 때문에 다행히 천운으로 화를 면할 수 있었다.)

 

전라도 억양이 강했다는 점과

인상착의, 전과자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떠벌렸다는 점 등을 종합하여

지난 전남 광주의 술집에서 벌어졌던 살인사건의 용의자들과 동일인물임이 확인되자

경찰은 전국에 비상 경계를 내리고

'1급 살인 용의자'로 조경수와 김태화를 수배한다.

 

이들은 '매우 위험한 인물'로 분류될 정도로 1급 살인 용의자였지만

도망다니는 신세에 지치고 지겨워졌던지

또다시 무차별적으로 강도 행각을 벌이고 나선다.

2월 6일 서울 종로의 미용실에서 여성손님과 미용사들을 상대로

강도 행위와 성추행을 한 뒤 도주,

그 후로도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오가며 총 38회에 걸친 강도 행각을 저질렀다.

 

결국 3월 5일, 은신처에 숨어 있던 조경수는 경찰에게 발각되어 먼저 체포되고

끝까지 도주하며 경찰을 농락했던 김태화 또한 서울 종로구의 카페 '팜파스'에서

한 형사에게 발각되어 체포되고 만다.

 

붙잡히고 나서도 나흘 동안 끈질기게 묵비권을 행사하는 김태화의 입을 열게 하기 위해

온 형사들이 동원되어 취조실에서 숯불을 피워 갈비를 구웠다는(??) 일화가 전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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