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 5. 23:25ㆍEtc.
1885년, 뉴욕은 큰 문제에 봉착합니다.
무슨 문제인고 하니 한 나라에서 보낸 선물이 항구에 방치되고 있었기 때문...
이 선물은 미국 독립선언 10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프랑스에서 보낸 서구 최대의 동상.
크기가 하도 커서 뉴욕으로 수송할 때 350개로 조각내서 들여온 것이 화근이 됩니다.
이 조각들을 가져오긴 했는데 다시 조립할만한 돈이 그 당시 뉴욕에는 없었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대로 놔두고 있으니까 6개 이상의 도시에서
조립 안할꺼면 우리한테 달라고 아우성 치는 상황까지 발생합니다.
하지만
자유의 여신상이 다른 도시로 넘어갈 최대 위기에 처했을 때 구세주로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퓰리처상으로 유명한 그 퓰리처가 나타났습니다.
당시 미국 최대 신문 '뉴욕월드'를 소유한 그는 거물 언론인답게 신문을 통한 모금운동을 벌입니다.
그에 화답하듯 미국 전역에서 남녀노소 가리지않고 모금에 동참,
애기 코묻은 돈까지 봉투에 넣어져 오는 감동적인 장면이 나오면서
드디어 조립에 필요한 충분한 자금이 확보 되었습니다.
이 기부에 참여한 사람은 무려 12만 1천명.
자금이 확보되자 본격적인 조립 작업에 들어갑니다.
우선 동상을 올리기 위한 받침대를 먼저 만들어야 하는데
46m에 이르는 동상 받침대는 당시 세계 최대의 콘크리트 구조물이었습니다.
받침대가 완성되고 마지막 시멘트가 마를 때 인부들은 은화를 던져넣고 행운을 기원했습니다.
받침대를 만들었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골격을 만드는 작업에 돌입합니다.
골격의 높이만 46m, 받침대까지 포함하면 30층 건물의 높이입니다.
파리의 에펠탑을 만든 에펠의 작품이라 그런지 자유의 여신상도 스케일이 크네요ㄷㄷ
골격 완성.
이제 외장공사에 돌입합니다.
외장은 손으로 깎아낸 28톤 117kg의 구리가 골격을 감싸게 됩니다.
동상이 신은 샌들은 7.6m랍니다. 사람 발의 32배...
동상 특유의 형태 때문에 어렵고 위헙한 작업의 연속이었습니다.
300여개의 외장조각들을 연결하는데 30만개 이상의 리벳이 소모되었습니다.
의복의 총 면적은 3360㎡가 넘고 뻗은 팔의 길이가 12.8m, 손톱 한개의 무게가 1.6kg입니다.
위험한 공사가 6개월동안 계속되었지만 다행히 사망자는 없었죠.
대망의 얼굴 붙이기 작업에 돌입합니다.
실제크기는 약 5m입니다. 드디어 얼굴이 제자리를 찾아가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이 얼굴은 조각가의 어머니를 모델로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25년동안 여신상은 산화되어 녹색으로 변합니다.
1902년까지 등대로 사용된 이 동상의 공식명칭은
'세상을 밝히는 자유의 여신상' 입니다.
뉴욕항의 입구를 지키는 자유의 여신상은 이제 세상의 등불이자 환영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훗날 받침대에 새겨진 시는 이민자들의 나라인 미국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자유롭게 숨 쉬고자 하는 그대의
지치고 힘든 염원이여, 나에게 오라
해안에 나뒹구는 가련한 영혼들,
폭풍우에 시달려 갈 곳 없는 이들은 나에게 오라
내가 황금의 문 옆에서 횃불을 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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