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18 판문점 도끼 사건

2018. 3. 29. 22:00Et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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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도끼 사건
 
1976년 8월 18일 판문점 인근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미루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이 북한 인민군인들의 도끼에 맞아 즉사한 사건


관측을 방해하는 나무 가지를 치기위해 작업하는 미군과 한국 작업반에게 시비를 거는 북한군




느닷없이 "죽여라!" 는 신호와 함께 달려드는 북한군

 

 

북한매체들은 김정일이 이 사건을 직접 지휘했음을 시인했습니다. 북한의 평양방송은 김정일의 군사적 지도력을 선전하면서 “김정일이 1960년대 중반부터 적들을 수세와 궁지에 몰아넣곤 했다”며 1976년 발생한 ‘판문점 도끼 만행 사건’을 거론했습니다.
 
이어 북한은 “도끼사건"이 발생한 당일 전체 인민군과 노동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에 전투태세 명령을 하달하고 준전시상태에 돌입했습니다. 그때 대학생, 중학교 교사 등 나이 든 사람들은 물론 16세 이상 고등중학교 학생들까지 군대에 징집한 결과 북한군에서는 유명한 “도끼사건패”라는 특수한 군인계층이 생겨나기도 했습니다.




도끼를 들고 미군 장교에게 덤벼드는 북한군



공격을 받은 미군 장교 두명은  그자리에서 즉사했다.




당시 희생당한 미군 장교들의 영정




한-미 연합군 데프콘2 발령, 미 7함대 한반도 급파

항공모함 미드웨이를 주축으로 하는 항모기동전단이 동해 북한의 영해를 침범, 북상했다.




괌에서는 B-52 폭격기 편대 출동, 북한 상공 선회




핵탑재 가변익 폭격기 F-111 20대 북한 상공 위협 선회





오키나와에서 이륙한 F-4 5개 편대 북한상공 위협선회

 

 

 

 

미 제2사단,한국군 전체 교전수칙대로 막사에서 탑재한뒤 진지 점령후 대기.....

 

 

미국은 교전상황에 대비한 구체적인 전쟁계획인 일명 '우발계획'까지 수립했다. 이 계획에 따르면  작전시 교전사태가 발생할 경우 한국군 포병과 미군포병이 북한영토인 개성의 인민군 막사를 포격하고 개성 위쪽까지 포격하여 인민군 포병부대를 궤멸시킨다는 것이었다.


또한 전쟁이 확대될 경우 개성과 연백평야에 대한 탈환까지도 염두에 두고 있었으며, 인민군의 전차부대가 남진할 경우 이에 대한 전술핵의 사용도 고려되었다.




상공엔 핵탑재 폭격기들이 선회하고, 북한 동해 깊숙히 항공모함 짱박아놓고 위협하며 문제의 미루나무를 제거하고 있는  미군과 한국군.



급박해진 김일성은 미국측에 각서를 보내 유감의 뜻을 전달하면서 전쟁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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