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로 존재하는 황당한 나라들

2018. 3. 17. 20:27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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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랜드 공국






(초대 로이 공과 조안 공비 부부)

 

시랜드 공국의 영토인 러프 요새(Fort Roughs)는 2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 해군이 방어 거점으로 삼고자 남서부해안에 세운 해상 요새 중 하나로

 

1942년에 건설되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 해상 요새와 벙커들은 방치되었는데, 전직 육군 소령이던 초대 시랜드 대공

패디 로이 베이츠가 러프 요새를 1967년 9월 2일에 그의 가족들인 아내 조안과 딸 페넬로페, 아들 마이클을 이끌고 점령합니다.

 

 

패디 로이 베이츠는 이 인공섬을 영토로 한 시랜드 공국의 건설을 선포하고, 자신을 시랜드 공 로이(Prince Roy of Sealand)라 칭하였습니다.



영국은 해군을 파견하였으나, 베이츠 일가가 총까지 동원하여 격렬하게 저항하여 물러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당시에는 영해의 기준이 해안선으로부터 3해리(약 5.556km)였기 때문에

해안선으로부터 10km 떨어진 곳에 있던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 밖에 있었고,

 

따라서 약 1년 2개월 후인 1968년 11월 25일에 내려진 법원의 판결에 따라 영국은 이 지역에 대해 사법권을 행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군은 러프 요새를 포기하였고, 시랜드 공국은 완전히 독립합니다.

 

 

하지만 1982년에 영해의 기준이 12해리(약 22.224km)로 확장되었기 때문에 현재 러프 요새는 영국의 영해에 속하게됩니다.

 

 

따라서 1982년 이후로 영국이 언제든지 원한다면 러프 요새에 군대를 투입하여 시랜드 공국을 무력으로 합병할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1978년 8월, 시랜드 공국에 사업차 방문한 독일인 알렉산더 아헨바하가 로이 공이 부재중인 틈을 타 독일인, 네덜란드인들을 용병으로 고용하여 마이클 공세자(2015년 현재 시랜드 공 마이클)를 인질로 잡고 시랜드 공국을 탈취하려 한 정변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으나, 로이 공은 헬기까지 동원한 강습을 감행하여 반란을 진압했습니다 .

 

로이 공은 반란을 진압한 후, 반란에 관계된 자들을 전쟁 포로 명분으로 구금하였고, 따라서 독일과 네덜란드 정부는 이들을 빼내기위해 대단히 고생했다고 합니다.




2006년 6월 23일, 러프 요새의 오래된 발전기에서 화재가 발생하였습니다.

 

요새에 거주중이던 주민은 영국 공군에 의해 무사히 구출되었으나, 시랜드 공국의 전 영토는 전소되고 말았습니다.

 

대화재의 여파로 공국은 심각한 재정 위기에 봉착하였고 국토재건공사(요새 보수공사) 는 2006년 11월에 완료되었으나, 이로 인해 공국은 수입을 아득히 초과하는 지출을 하였습니다.

 

결국 버틸 수가 없어진 베이츠 공가는 2007년 1월에 공국을 한화 약 1200억원의 가격에 매물로 내놓았습니다.

 

 

스페인의 부동산 회사, 일본의 갑부, 그리고 스웨덴의 파일 공유 서비스 업체인 The Pirate Bay 등등과 매각을 놓고 협상을 벌였지만 불량한 접근성과 지나치게 높은 가격 등의 문제로 팔리지 않았고, 공국은 지금까지 베이츠 공가의 통치 아래에 있습니다.




1999년부터 초대 로이 공이 알츠하이머를 앓아오고 영국 레이온시(Leigh-on-Sea)의 요양원에서 요양중 서거하자

 

 

아들 마이클 공이 2대 시랜드공으로 즉위하게됩니다.



공위를 물려받은 마이클 공은 섭정 시기부터 꾸준히 진행했던 시랜드 공국의 사업체화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그 일환으로 로이 공이 살아있던 시기에는 건드리지 않았던 시랜드 기사단(원래는 보안업체나 용병고용)을 개편하여

전세계에 공작,백작 ,기사작위를 판매하여 수입을 올렸습니다.(우리나라에도 시랜드 공국 작위 산사람 있습니다 ㅋㅋㅋ)

 

제일 비싼 공작작위가 70만원정도 제일싼 lord는 3만원.

시민권은 21만원이라고합니다

 

헤이븐코(아동 포르노와 멀웨어를 제외한 모든 파일을 호스팅해주는 서버서비스) 를 재설립하여 중단되었던 인터넷 사업을 다시 시작하였습니다.

 

마이클 공은 시랜드 공국 건국의 산 증인이었던 자신의 기억을 십분 활용하여 자서전을 집필하는 등 수익사업에 힘쓰고 있어 공국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현재 국민 1인당 GDP 22000달러




로이 공 시기의 시랜드 공국은 국가로 인정받기 위해 갖은 노력을 하였으나, 마이클 공은 공국의 국제법상 지위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며 오히려 공국의 이미지를 이용한 수익사업에 힘을 쏟아 공국을 사실상 베이츠 가문 소유의 기업체로 탈바꿈시켰습니다.

 

 

그 예로 시랜드 달러를 들 수 있는데, 로이 공은 공국이 독립국임을 주장하기 위해 틈틈이 새로운 도안으로 동전을 발행하고 다양한 액면가로 구색을 갖추었으나 마이클 공은 부모님을 추모하는 기념 주화 한 종류만을 소량 발행하고 있습니다.




마이클 시랜드공의 아들이자 공세자인 제임스 공. 현재는 샬럿 공세자빈과 결혼한 사이라고합니다

 

 

외교

 

아직 정식국가중 시랜드공국을 승인한 나라는 없으며 영국의 묵인과 방임하에 존재하고있습니다.

한때 총질까지 한사이인데 화재때 구조도해준거보면 영국과는 사이가 나쁘지않은듯.

 

사실 시랜드 공국 가문은 영국에 머무는날이 더많다고합니다..

 

 

1978년 독일인 알렉산더 아헨바하 등이 일으킨 반란의 사후 처리를 위해 독일(당시 서독)에서

시랜드 공국의 영국 주재 대사관에 외교관을 파견하여 협상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

 

 

 

군사



시랜드 공국은 여러 정의 총기와 보트, 헬리콥터 1기를 보유하고 있다. 독립 당시에는 총기를 이용하여 영국군에 맞섰고, 1978년의 외자의 난에서는 헬기를 이용하여 군사 작전을 펼쳤습니다.

 

 


 

















 

2. 헛리버공국




1969년 11월, 호주 정부가 국내에 지나치게 많은 잉여 밀 생산량 때문에 고민하다가 내놓은 밀 쿼터제 법안이 헛리버 공국의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호주 서부 에 약 4000헥타르의 농장을 가지고 있던 캐슬리 일가는 졸지에 오직 40헥타르분의 토지에서 수확한 밀만 판매할 수 있게 되었고

반발을 가지게되었습니다.

 

 

 

그대로 앉아서 망할 수는 없었던 레너드 캐슬리는 정부에 5200만 호주 달러의 손해배상을 청구하였고, 그와 동시에 사문화되긴 했지만 아직 호주 법률상으로 남아있던 영국 반역법의 조항과 호주 헌법의 헛점 을 이용하여 독립을 선언하였습니다.


레너드 캐슬리의 본업은 변호사였는데, 레너드는 자신의 변호사적 지식을 총동원해 헌법의 허점을 집요하게 파고들어서

 

'경제권이 탈취된 상황에서 토지 상실의 위협이 생긴다면 자위권을 행사해 자체적인 정부를 성립할 수 있다'라는 법에 따라 호주 연방에서의 탈퇴를 선언하며

 

자신이 헛리버의 국왕임을 선언하고, 동시에 독립국 헛리버의 통치권 일부를 영연방의 수장인 영국 엘리자베스 2세에게 바쳐 영연방의 일원이 될 것을 제안했습니다.

 

또한 '탈퇴를 한 시점에서 모든 행정법은 무효가 되고 다시 입법해야 한다'는 법에 따라 헛리버에 매긴 조세정책과 규제법이 무효가 되었죠




호주 정부도 이걸 가만히 앉아서 보고 있지는 않아서 탈퇴를 반역으로 간주해 제재하려 했으나,

 

 

'실질적으로 영국 국왕을 섬기는 자는 법적으로 국왕을 대적하였어도 반역으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영연방 법에 따라 국왕에게 통치권을 바친다는 제안을 한 시점에서 반역으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결국 레너드는 호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만의 왕국을 건설하게 되었습니다.



(초대 레나드 공과 초대 셜리 공비, 셜리공비는 2013년에 안타깝게 운명하셨습니다)

 

호주 정부와 실랑이를 벌이며 독립을 인정하지 않자 레너드는 자신이 국왕이 되는 왕국을 선언했던 것을 포기하고, 영연방과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 되기 위한 요건을 충족하기 위해 자신의 직위를 국왕에서 대공(Prince)으로 낮추며,

 

영연방의 수장이자 영연방 왕국들의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에게도 충성을 맹세하며 헛리버를 봉신 국가로 인정해줄 것을 요청하는 공문서를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결국 1970년 4월 21일 왕국에서 공국으로 국가의 지위를 낮춤을 선포하였고, 동시에 엘리자베스 2세에게 충성 맹세를 하여 영연방 왕국의 일원이자 영연방의 일원이 됨을 선포했습니다. 이후 자국 국왕인 엘리자베스 2세의 위신과 권한을 호주 의회와 정부가 침해할 수는 없다는 문제와, 국왕을 공유하고 있는 영국 등과의 관계 문제, 그리고 여타 법리적 문제들로 인해, 1972년 헛리버 공국이 호주 법의 영향이 미치지 않는 지역이 됨을 선포했고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호주정부는 현재까지 이것은 인정하고있지않은데

 

 

호주정부의 복지혜택이 헛리버사람들에게 주어지지 않는것으로보아 사실상 독립국이나 마찬가지가 된듯합니다.



(영국 버킹엄궁전의 공식 답장)

 

2016년 4월  버킹엄궁전으로부터 공국인정, 초대 대공 레너드 1세의 봉신(신하)인정 공문이 날아오면서

 

엘리자베스 여왕의 90세 생신 축하편지를 보냈고 이에 한번 더 버킹엄에서 감사답장이 오면서 진짜로 영연방소속 독립국이 되었습니다.



헛리버의 면적은 우리나라 안양,부천,의왕시보다 넓은수준. 다만 인구가 50명에 불과해 터무니없이 적다는게 문제입니다

여권도없이 도장찍어주는 식으로 관리되는듯.




(우체국을 겸한 헛리버 공국의 공식정부청사)

 

우편,택배는 캐나다경유해서 온다고합니다



관광업이 성업하는 중인데, 미리 예약을 해야 공국에 입국할 수 있으며, 원한다면 수도 나인의 캠핑장에서 묵었다 갈 수도 있습니다. 입국 비자 발급료는 4달러 입니다.

 

 

차를타고오면 대공께서 친히 주차도 안내하시고 관광객들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헛리버 공국의 랜드마크 레나드대공의 흉상




공식 헛리버 달러



레나드 공이 나이가 드셔서 막내인 그래미1세에게 양위하고 물러나고

그래미 1세가 헛리버의 2대 대공으로 2017년 즉위하였습니다




헛리버의 경제는 주로 밀 판매를통해 이루어지며

 

최근 즉위한 2대 그레미1세는 들꽃재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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